혼자 여행이 처음이라면, 여수만큼 마음 편한 도시도 없다.
혼자 여수 간다고?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 여행을 결심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주변 눈치도 보이고, 혼자 밥 먹는 게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그냥 가고 싶어졌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걷고 싶은 데서 걷고. 그런 여행이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목적지로 고른 게 여수였다. 바다도 있고, 맛집도 많고, 혼자 가기에 딱 적당한 규모. 5년 만에 다시 찾은 여수였는데, 이번엔 철저하게 '먹방 여행'으로 계획을 잡았다.
KTX를 알아보다가 매진이라 급하게 비행기 표를 끊었다. 김포에서 여수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 사실 비행기가 훨씬 편하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여수 첫 끼는 무조건 게장 – '꽃게장 1번가'
여수 공항에 내려서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설레기 시작했다. 짐을 맡기기도 전에 먼저 향한 곳은 꽃게장 1번가. 여수 왔으면 게장부터라는 건 불문율이라고 생각한다.
1인 주문이 가능하다는 게 한행러한테 정말 반가운 포인트다. 가격은 35,000원인데, 밥상이 차려지는 순간 가성비 걱정은 싹 사라진다. 게장, 새우장, 양념 게장, 칠게 튀김에 꽃게탕까지. 한 상이 이렇게 차려지는데 1인분도 이 정도라고?
돌게장 무한리필, 이게 진짜 여수 인심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돌게장 무한리필이었다. 처음엔 그냥 곁들임 반찬 정도로 생각했는데, 리필이 된다는 말에 눈이 커졌다. 짭조름하면서도 간이 딱 맞아서,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게장으로 밥도둑이라는 말, 여기 와서 제대로 실감했다.
식사 후에 화장실에 치실이랑 칫솔까지 준비돼 있었는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게장 먹고 이쑤시개 찾아 헤매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순신 광장에서 시작하는 간식 순례
배가 불러도 간식은 별개다. 이순신 광장 주변은 먹거리 천국이라 그냥 걷기만 해도 손이 바빠진다.
노란고래 찹쌀 꽈배기 – 겉바속촉의 정석
노란 고래 찹쌀 꽈배기 줄이 꽤 길었다. 혼자 여행이라 줄 서는 게 좀 어색하긴 했는데,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어색함이 사라졌다. 고구마 치즈 찹쌀 꽈배기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에는 찹쌀 반죽 사이로 치즈와 고구마가 채워져 있다. 달달하면서 고소하고, 씹을수록 자꾸 손이 가는 맛.
나중에 구독자 추천으로 치즈 토핑을 추가해서 다시 먹었는데, 단짠단짠이 완성되면서 훨씬 맛있었다. 처음부터 치즈 추가를 강력히 권한다.
여수당 소금빵 & 쑥 아이스크림
여수당에서는 소금빵이랑 쑥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소금빵은 조금 눅눅해진 상태였는데도 버터 향이 진하게 났다. 갓 구워서 바삭할 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서 살짝 아쉬웠다.
쑥 아이스크림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쑥 특유의 향이 아이스크림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여수에서 쑥 관련 먹거리가 꽤 많은데, 아이스크림으로 먹는 건 처음이라 신선했다.
유탑 마리나 호텔 – 오션뷰 8만 원의 가성비
숙소는 유탑 마리나 호텔로 잡았다. 1박에 8만 원에 오션뷰라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뷰에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혼자 여행이라서 숙소에 크게 신경 안 쓰려 했는데, 이 뷰 하나로 숙소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30분 요트 탑승권도 제공해 주는데, 숙박비 생각하면 진짜 챙겨주는 게 많은 곳이었다.
첫날 이것저것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방에 눕자마자 기절했다. 혼자 여행이라 아무도 깨워줄 사람이 없는데,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둘째 날: 향일암 계단과 해상 케이블카
향일암 – 힘들게 오른 만큼 보이는 뷰
둘째 날은 향일암부터 시작했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올라가는 게 쉽지 않은데, 올라가다가 해탈문을 발견하고 잠깐 웃었다. 이 문 지나면 해탈이 되는 건가 싶어서.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진짜 말이 필요 없었다. 탁 트인 남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암자 곳곳에 붙어 있는 현판 문구들도 천천히 읽으면서, 혼자 여행 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있었다.
여수 해상 케이블카 – 편도 14,000원의 짜릿함
향일암을 내려오고 나서는 여수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돌산 정류장에서 자산공원 방향 편도로 탑승했는데, 요금은 14,000원이다.
케이블카가 생각보다 속도가 꽤 빠른 편이라 처음엔 살짝 긴장됐다. 그런데 발밑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순간, 그 긴장감이 감탄으로 바뀌었다. 케이블카 안에 블루투스 기능도 있다는 것도 타면서 알았는데,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와이드 커피 스탠드 – 노을이 공짜인 카페
고소동 언덕길에 있는 와이드 커피 스탠드는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약과 쿠키 같은 메뉴도 독특하고, 테라스 자리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다.
여수 시내 소품샵이나 카페들이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는 걸 이날 알았다. 둘째 날 저녁 카페 여러 군데를 못 간 게 지금도 좀 아쉽다. 여수 카페 투어를 제대로 하려면 오후 일정을 좀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
저녁은 매운 갈비찜 – '한국의 팔팔'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는 혼밥의 낭만
저녁은 추천받은 한국의 팔팔에서 매운 갈비찜을 포장했다. 혼자라서 테이블에 앉아 먹기 좀 어색할 것 같아서 포장을 선택했는데, 오션뷰 보면서 먹으니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찜 하나에 4만원인데, 뚜껑을 열었을 때 고기 양이 진짜 많았다. 두툼하게 잘린 갈비가 짭조름한 양념에 박혀 있는데, 구워 먹는 돼지갈비 양념이랑 비슷하면서도 더 진한 맛이 났다. 매운맛이라서 계란말이랑 참치마요 주먹밥을 곁들였더니 밸런스가 딱 맞았다.
숙소에서 바다 보면서 갈비찜 먹는 그 순간이, 이번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지막 날: 통장어탕과 요트 투어
할머니의 추천이 정답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원래 가려던 장어 식당이 있었는데 숙소 근처 할머니가 다른 곳을 추천해 주셨다. 처음엔 그냥 가던 곳을 가려다가, 뭔가 현지인 추천이라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통장어탕 15,000원. 원래 가려던 곳보다 저렴한데, 맛은 그 이상이었다. 장어가 통으로 들어가 있고 국물이 고소하게 우러나 있어서, 숙취 해장이나 아침 식사로 딱이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요트 투어로 마무리
식사 후에는 숙소에서 제공해준 요트 탑승권으로 투어를 마쳤다. 날씨가 정말 좋은 날이라 바다 위에서 보이는 여수 풍경이 선명했다. 30분이 짧다면 짧을 수 있는데, 여행의 마무리로는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다.
내 생각 – 여수 혼행,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5년 만에 다시 온 여수였는데, 혼자 와서 더 좋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서로 맞춰야 하는 게 생기는데, 혼자라면 먹고 싶은 걸 먹고, 서고 싶은 데 서고, 사진 찍고 싶을 때 찍으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페를 더 많이 못 간 것. 여수는 뷰 좋은 카페가 정말 많은 도시인데, 맛집 위주로 돌다 보니 카페 탐방은 좀 부족했다. 다음에 온다면 오전에 카페, 오후에 맛집 순서로 일정을 짜보고 싶다.
혼자 여수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보길 권한다. 이순신 광장 주변만 잘 돌아다녀도 간식부터 식사까지 다 해결된다. 숙소는 오션뷰로 잡는 게 진짜 여수 여행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장소추천 메뉴가격
꽃게장 1번가 꽃게 정식 (돌게장 무한리필) 35,000원
노란 고래 찹쌀 꽈배기 고구마 치즈 꽈배기 (치즈 추가 추천) -
여수당 쑥 아이스크림, 소금빵 -
한국의 팔팔 매운 갈비찜 40,000원
통장어탕 통장어탕 15,000원
여수 해상 케이블카 돌산~자산공원 편도 14,000원
2박 3일이 꽉 찬 일정이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쉬울 만큼 여수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게장 리필 가능한 곳 찾고 있다면, 일단 여수부터 검색해 보시길.
